home >  게시판 > 나눔자리

  36일 십자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
작성자   김동일 작성일 17-04-06 조회수   69

십자가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가톨릭 신자뿐입니다. 믿으면서도 십자가 하면 처음 드는 생각은 고통, 수난, 희생, 죽음입니다. 사순시기 막바지에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잘 죽어야 잘 부활할 수 있다.’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사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죽음 후에 부활의 삶이 있으니까요. 그런데도 죽음을 무서워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가지고 오는 고통, 수난, 희생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잘 죽을 수 없고, 당연히 잘 부활할 수가 없습니다. 부활을 원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본능, 본성을 거슬러야 합니다. 수난과 고통에 기꺼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활이 따라오니까요. 이것을 잘 알지만 몸과 마음은 곧장 부활로 넘어가길 원합니다. 그런데 또 그것이 그렇게 되면 안 되고, 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아는 것과 실제 사는 것이 다른 현실을 또 우리는 마주하며 내가 이정도군!’ 하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십자가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 부활의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시며 죽음을 이겨내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혹은 그 비슷한 형태로 죽었습니다. 선을 위해, 의를 위해, 법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만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우리를 위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치유하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우리를 가르치시지도 않았을 것이며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직 사랑이란 놈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고통인지 수난인지 희생인지 뭔지 예수님께서는 이름이 뭐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이라면 그냥 하셨습니다. 결과는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십자가형이었습니다. 권력, 기득권에 대항했다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던 사람들의 마지막은 이상하고 놀랍게도 이런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셨고,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도 그랬고, 사람들을 진짜사랑하게 되면 진짜 부활하게 됩니다, 이분들처럼. 십자가, 부활, 사랑은 하나의 점인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고통과 수난과 희생도 나오고, 사랑과 연민과 위로도 나오고, 기쁨과 환희와 부활도 나옵니다. 그 점을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확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생명이 시작되는 곳, 십자가, 사랑의 아름다운 결과, 생명과 부활. 예수님 십자가의 원뜻을 새겨봅니다. 

리스트로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51 40일 우리는 모두 예언자다 김동일 17-04-15 77
350 39일 끝이 열려있다는 것 김동일 17-04-15 61
349 38일 깊이 생각해 보렴 김동일 17-04-15 59
348 37일 아직 기회는 있다 김동일 17-04-08 53
347 36일 십자가, 생명이 시작되는 곳 김동일 17-04-06 70
346 35일 거두어 가시는 하느님 김동일 17-04-05 44
345 34일 주시는 하느님 김동일 17-04-04 60
344 33일 방관하는 예언자 김동일 17-04-03 56
343 32일 뒤따르시는 하느님 김동일 17-04-02 46
342 31일 세상을 하직하기를… 김동일 17-03-31 53
341 30일 요나의 기도 김동일 17-03-31 55
340 29일 하느님께는 투덜대도 된다 김동일 17-03-30 61
339 28일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 김동일 17-03-29 50
338 27일 통치자들을 끌어내리시는 하느님 김동일 17-03-28 56
337 26일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 김동일 17-03-27 5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