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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일 방관하는 예언자
작성자   김동일 작성일 17-04-03 조회수   88

요나 4,5

요나는 그 성읍에서 나와 성읍 동쪽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하였다.

 

방관한다와 예언자가 같이 쓰일 수 있을까요? 예언자가 방관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명을 받들어 외치는 이가 예언자인데, 방관이라! 이건 예언자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책임감 없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예언자가 되고 싶어했는가? 되고 싶어해서 되었다면 응당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하느님께서 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요나에게 예언직을 내렸습니다. 무조건 그에 따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요나처럼 이리 저리 도망가고 투정부리고 못하겠다, 죽여달라 이렇게 투덜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예언자가 방관하면 안 될까요? 세례자 요한은 충실히 자신의 길을 갔습니다. 자기의 역할, 사명, 위치, 순명을 잘 알고 행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례자 요한은 우리가 좀 가까이 가기 어려운, 닮고 싶으면서도 먼 곳에 계신 느낌입니다. 그런데 요나의 방관은 오히려 친근합니다. 사실 요나는 하느님의 명을 따라 니네베에서 외쳤고, 니네베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봤습니다. 본인의 역할을 어쩌면 끝난 셈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보고 싶었을까요? 회심하고 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잘못되기를 혹은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지길 기대한 것일까요? 그래서 그 기대가 이루어지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일까요?

요나의 방관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요? 요나는 엄격하신 하느님, 벌하시는 하느님을 기대하는 것인가요? 분명 요나는 하느님께서 자비하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더 열받게 해서 하느님이 밉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다렸을까요? 왜 성읍 안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어떤 일을 생생히 보려고 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자리 잡았을까요? 자기에게 불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요? 한적한 곳에서 편안하게 구경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느님의 예언직에 초대되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살아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예언자가 우리 자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 일에 멀찍이 서서 옳다 그르다 하면서 분석하거나 훈수 두며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은지요? 세상 일을, 이웃의 일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한적한 곳에서 편안히 자리 잡고 앉아 세상의 부조리를 이야기 하고만 있지는 않은지요? 하느님의 정의, 복음의 정의를 세상 안에서 살아내며 증거하는 예언자인지 성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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